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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 Pastor's Blog

새벽묵상
Daily Devotions
호세아 3장
오늘 본문은 짧지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음행을 한 아내의 관계가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 숭배를 한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1절에 기록된 “건포도 과자”는 우상 숭배 때 사용되었던 제사 음식을 가리킵니다. 특히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던 앗수르의 아스다롯 신전에 바쳐졌던 떡과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렘 7:18 참고). 비록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이와 같이 호세아 선지자도 음녀가 된 그 여자 즉 고멜을 사랑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겠다는 의지이며, 사랑을 실천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희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에 기록된 은과 보리는 고멜을 다시 데리고 오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가격이었습니다. 이미 호세아의 아내였는데 다시 값을 치르고 데리고 와야 했던 것입니다. 당시 노예의 몸값이 은 30세
김정훈 목사
Dec 4, 2025
호세아 2장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 본문의 “그”라는 대명사는 중립적으로 쓰였으며, 따라오는 여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대신 “그녀”로 해석을 하시는 것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에 있지 않다 하십니다. 그 이유는 아내로 묘사된 이스라엘이 음행과 같은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풍요의 신이라 불리던 바알을 따르며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광야로 보내시며 (3절), 다음 세대에 대한 긍휼함을 거두시고 (4절), 가시와 같은 고난으로 그들의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십니다 (6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바알을 우상숭배 했던 날만큼 그들에게 벌을 주겠다 하십니다 (13절).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약속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김정훈 목사
Dec 3, 2025
호세아 1장
솔로몬 왕이 죽고나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왕국으로 분열이 됩니다.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BC 722년에 멸망을 하고,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BC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을 한 곳은 북이스라엘 왕국이었고, 멸망하기 직전인 BC 715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기로 정치경제적으로 번영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2세가 죽고나서 쿠데타와 암살이 반복되면서 급격한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경제적으로는 번영했던 시기였지만, 영적인 타락과 함께 사회의 도덕은 이미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완전히 무너졌던 시대였습니다. 호세아의 메시지가 중요했던 이유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적인 요소를
김정훈 목사
Dec 2, 2025
데살로니가후서 3장
벌써 2025년의 마지막 달입니다. 연말이 되면 늘 느끼는 것은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간에 민감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우리의 끝이 다가올수록 시간의 흐름에 더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서는 전서와 후서 모두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에 대한 신앙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종말 신앙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단적인 사상에 물든 종말 신앙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염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만듭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종말을 준비
김정훈 목사
Dec 1, 2025
데살로니가후서 2장
1987년에 있었던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운영하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총 32명이 집단 자살한 것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1993년 텍사스 웨이코에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던 다윗교가 미연방수사국과 대치하다가 교주와 대부분의 다윗교도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잘못된 종말론에 세뇌를 당한 광신도들이 사이비 교주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종말론은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사이비 집단이나 이단 종교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도구로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불안한 사회적 요소들을 이용해 종말론을 내세우며,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재산과 가족까지 바쳐야 한다는 세뇌를 합니다. 잘못된 종말론은 잘못된 구원론으로 이어지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김정훈 목사
Nov 29, 2025
데살로니가후서 1장
데살로니가에 서신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사도 바울은 또 다른 서신을 보냅니다. 앞서 보낸 서신을 데살로니가전서, 이후에 보낸 편지를 데살로니가후서로 성경은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두 서신을 보냈을 때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회였지만,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박해를 견디며 신앙을 지켰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 번이나 서신을 보낸 이유는 이들이 직면한 몇 가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핍박을 믿음으로 이겨낼 것과 종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 편지를 적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종말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 잡아 교회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
김정훈 목사
Nov 28, 2025
데살로니가전서 5장
Happy Thanksgiving!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추수감사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많은 성도들이 삶의 모토로 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6-18절). 어쩌면 추수감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모든 상황 가운데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전했던 배경을 살펴보면, 데살로니가전서 4장 후반부에서부터 다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주제가 5장 전반부까지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장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묘사를 했다면, 5장에서는 재림의 때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김정훈 목사
Nov 27, 2025
데살로니가전서 4장
오늘 본문은 크게 두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의 모습 (1-12절) 과 예수님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 (13-18절) 에 대한 메시지입니다. 사랑에는 신기한 성질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던 사람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은 우리의 생각의 축을 자신에게서 이웃으로 옮겨지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전반부에서는 사도 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시 교회의 성도들과 이방인들의 가장 큰 차이는 우상숭배와 음행에 있었습니다. 성경은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부부의 관계를 허락하지만, 이교 사회에서는 결혼한 사람 외의 사람들과
김정훈 목사
Nov 26, 2025
데살로니가전서 3장
추수감사절 주간(Thanksgiving Week)을 맞이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수감사절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귀한 명절입니다. 어떤 분들은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으로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고 인사를 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안부를 묻고 좋은 소식을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참 큰 힘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습니다. 1절과 5절에 “참다 못하여”라는 표현에서 마치 부모가 자녀를 걱정하는 것과 같은 바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박해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를 일찍 떠나야 했던 바울이 아덴에 머물면서 안부를 전하기 위해서 바울의 제자인 디모데를 보냅니다.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내는 이유는 성도들의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믿음을 세워 환난 중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
김정훈 목사
Nov 25, 2025
데살로니가전서 2장
오늘 본문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사도행전 17장 전반부를 보시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렀던 기간은 약 3주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는데, 바울은 그곳에서 성경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했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바로 기다리던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던 무리도 있었으나, 유대인들은 바울을 시기하여 적대시했으며 심지어 깡패들을 동원해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그들의 분노를 당시 회당장이었던 야손에게 쏟아붓습니다. 오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는 사도 바울을 적대시했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거짓으로 바울의 평판을 깎아내렸는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접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의 말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바울을 공격했는지 충분히 추론이 가능합니다. 3절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바울과
김정훈 목사
Nov 24, 2025
데살로니가전서 1장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서신을 보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저자이고, 사도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하고 있는 실루아노(실라)와 디모데가 언급이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지역의 도시로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방문했습니다 (사도행전 17:1-9 참고). 이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도행전 18:1-11 참고). 이 서신은 박해받고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적혀졌으며,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서 편지를 적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칭찬하면서 세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보여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로 인해서 바울
김정훈 목사
Nov 22, 2025
마가복음 16장
오늘 묵상으로 마가복음에 대한 묵상이 끝을 맺습니다. 전장인 15장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기록이라면, 16장은 예수님의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을 묵상하시면서 생각해 볼 것은 “빈 무덤” 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가 왜 빈 무덤일지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열 한 명의 제자들이 아닌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먼저 찾아왔습니다.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오늘날로 치면 주일 새벽 미명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것입니다. 당시 무덤은 돌 무덤으로 동굴과 같은 작은 공간에 시신이 놓였고, 입구는 돌로 막았습니다.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은 이미 비워져 있었습니다.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은 천사였던 것 같습니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 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열 한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을 전
김정훈 목사
Nov 21, 2025
마가복음 15장
본 장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체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는 장면 (1-15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 (16-3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놓이시는 장면 (33-47절) 입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데리고 온 이유는 당시 사형의 권한은 로마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공회는 종교적 판결을 할 수 있었지만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8:31 참고). 하지만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어떻게 로마 총독에게 압력을 가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종교적인 이슈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를 일으킨 정치범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을 자칭하는 정치적 선동자로 몰아간 것입니다 (2절). 당시 로마 제국이 가장 싫어했던 것이 정치적 폭동이었고, 이를
김정훈 목사
Nov 20, 2025
마가복음 14:32-72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육체적인 고난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영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신 곳이 바로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시간이었습니다.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한 감람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동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 기도를 이곳에서 드린 것입니다. 유월절 마지막 만찬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에서 기도를 하실 때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3절) 라고 묘사된 예수님의 감정은 평소 많은 기적을 행하시며 영적 권위를 가지시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던 예수님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34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
김정훈 목사
Nov 19, 2025
마가복음 14:1-31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요?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장면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리고, 양을 각 가정으로 가져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이 유월절은 이집트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 중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로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
김정훈 목사
Nov 18, 2025
마가복음 13장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에서 우리는 많은 영적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특별히 마지막 때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종말에 대한 말씀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통해 전해집니다.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성전 건물의 화려함에 대해서 묻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아닌 성전의 화려함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조차도 건물의 화려함에 매료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건물의 돌이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뜨려질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실제로 서기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서 성전은 철저히 파괴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감람산은 기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성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대하고 앉으셨을 때에 네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성전의 파괴가 어느 때에 있을지 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김정훈 목사
Nov 17, 2025
마가복음 12:28-44
우리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법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나타내는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려는 생각입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주의를 따르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립니다. 종교적 열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한 서기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한 질문이지만,
김정훈 목사
Nov 15, 2025
마가복음 12:1-2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예루살렘에 머무시는 동안에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을 마가는 11장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되는 여러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대적했는지를 은유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의 등장 인물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포도원을 만들고 타국으로 떠난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농부들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고, 포도원에 보낸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선지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낸 포도원 주인의 아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비유에서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최후로 주인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이 아들마저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이 돌아올
김정훈 목사
Nov 14, 2025
마가복음 11:20-33
오늘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11장의 12-14절의 연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잎사귀가 무성한 한 무화과나무에 다가 가셨는데, 그 나무에는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참고로 13절에 마가가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라고 언급을 한 부분이 독자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무화과의 때가 아니어서 열매가 없는데 예수님은 왜 그 나무를 저주하셨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3월경에 작은 열매가 열리고, 4-6월경에 잎이 나고, 제대로 된 열매는 6-8월에 열렸습니다. 3월에 나는 작은 열매를 ‘파가이’라고 불렀는데, 무화과나무에 잎이 무성하다면 당연히 파가이가 달려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셨던 나무는 잎만 무성하고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마가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기록한 것은 아직 6-8월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나무에서 찾으셨던 것은 작은 열매였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는
김정훈 목사
Nov 13, 2025
마가복음 11:1-19
고대 중동에서는 전쟁을 나갈 때는 말을 타고, 평화의 때에는 나귀를 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면서 나귀의 새끼를 타신 것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로마의 권력자들은 말과 병거를 타고 입성을 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군사력과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으로 백성을 섬기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앞서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11장에서는 연약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을 구약의 선지
김정훈 목사
Nov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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