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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장

솔로몬 왕이 죽고나서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두 왕국으로 분열이 됩니다.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서 BC 722년에 멸망을 하고, 남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서 BC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을 한 곳은 북이스라엘 왕국이었고, 멸망하기 직전인 BC 715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기로 정치경제적으로 번영했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 2세가 죽고나서 쿠데타와 암살이 반복되면서 급격한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경제적으로는 번영했던 시기였지만, 영적인 타락과 함께 사회의 도덕은 이미 붕괴 직전이었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속은 완전히 무너졌던 시대였습니다. 호세아의 메시지가 중요했던 이유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외적인 요소를 보고 상황을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북왕국이 계속해서 우상 숭배 가운데 빠져서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을 때, 이미 이들의 쇠락은 예견된 사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호세아서 1장에서 우리는 두가지 상징적인 예언 활동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둘째는 자녀들의 이름입니다. 두 가지 모두 충격적인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맞이하고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부가 언약으로 맺어진 것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의 관계 안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음란한 여자처럼 하나님이 아닌 바알과 같은 우상을 숭배했던 것입니다.

호세아의 세 자녀의 이름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가 어떤지 보여줍니다. “이스르엘”의 뜻은 심판의 날이 올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었고 (4절), “로루하마”의 뜻은 북이스라엘이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고 (6절), “로암미”의 뜻은 북왕국이 더 이상 내 백성이 아니라는 관계의 단절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9절).

이렇게 절망적인 심판의 예언이 호세아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 선언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전해주셨습니다. 심판 가운데 회복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해변의 모래같이 셀 수 없는 이스라엘 자손이 나타날 것과 하나님의 백성이 사라진 그 곳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0절). 그리고 무엇보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로 통일될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11절).

이러한 희망의 메시지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모두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새롭게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심판 가운데 회복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시기를 소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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