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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28-44

우리는 율법과 율법주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법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나타내는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의롭게 되려는 생각입니다. 이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주의를 따르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신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 스스로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율법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립니다. 종교적 열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한 서기관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한 질문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율법의 핵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 두 가지를 알려주셨는데 요약하자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30-31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35-37절). 36절의 말씀은 시편 110편에 기록된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를 주라 부릅니다. 육체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신적인 존재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에 대한 경고와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칭찬은 율법주의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만, 정작 그들의 내면은 교만과 외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교만한 서기관을 조심하라 경고하신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가난한 과부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렙돈은 당시 가장 작은 동전이었습니다. 거의 가치가 없는 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부에게는 두 렙돈이 생활비의 전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으로 판단하는 가치가 아니라 이 여인의 마음의 헌신을 본 것입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가치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를 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는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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