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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3장

벌써 2025년의 마지막 달입니다. 연말이 되면 늘 느끼는 것은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간에 민감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우리의 끝이 다가올수록 시간의 흐름에 더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서는 전서와 후서 모두 예수님의 재림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에 대한 신앙은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바른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아가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종말 신앙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단적인 사상에 물든 종말 신앙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염세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 만듭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종말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던 두 편의 서신은 이러한 잘못된 종말 신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오늘 본문 6-7절에 언급된 “게으름”과 “무질서”는 잘못된 종말 신앙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말을 핑계로 현실을 도피하는 모습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문구는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인 스피노자의 명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의 철학적 명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누가 이 말을 먼저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삶의 모습이 이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13절). 내일 우리에게 세상의 종말이 다가온다고 해도 우리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개인의 죽음을 먼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말에 대한 때와 시기는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아시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결국 끝이 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더 소중합니다. 그리고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의미 있는 일들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지나고 사랑하는 주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예수님께 이 땅을 살면서 무엇을 했는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늘 본문과 함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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