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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1-19

고대 중동에서는 전쟁을 나갈 때는 말을 타고, 평화의 때에는 나귀를 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시면서 나귀의 새끼를 타신 것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을 나타냅니다. 로마의 권력자들은 말과 병거를 타고 입성을 했지만,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군사력과 권력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으로 백성을 섬기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앞서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11장에서는 연약한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십자가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실 것을 구약의 선지자가 이미 예언을 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스가랴 9:9). 스가랴 선지자는 기원전 520년경에 활동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약 500년의 시간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왕권이 세상의 왕들과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서 공의와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나귀의 새끼는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였습니다. 이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위해서 따로 구별된 나귀인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이란 어떤 목적을 위해서 “따로 구별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도쉬”는 ‘분리되다, 구별되다, 따로 떼어 놓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거룩함이란 단순한 도덕적 개념을 넘어서 하나님께 속하여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를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룩함은 죄가 없으시고 절대적인 하나님만의 온전한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은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통해, 우리가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 입성 이후 기록된 두 가지 사건인 무화과 나무에 대한 심판과 성전 청결 사건도 그 기준이 바로 이 거룩함에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잎은 무성하지만 열매가 없는 모습은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여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열매 없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챙기는 장소인 “강도의 소굴”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쳤지만 며칠이 못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습니다. 이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열매 없는 외형적인 종교 생활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한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함은 마음의 자세에서 시작합니다.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자신의 탐욕만을 추구하는 자기중심적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께 속한 구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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