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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컬럼 | Pastor's Blog

새벽묵상
Daily Devotions
전도서 12장
지금은 작고하신, 이 시대 최고의 지성으로 잘 알려진 이어령 씨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생의 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직도 제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숨만 쉬지 못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현재의 삶을 더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전도서 12장은 청년의 때에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것을 충고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1절). 여기서 곤고한 날,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은 인생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말은, 아직 힘
김정훈 목사
Oct 18, 2025
전도서 11장
전도서 11장에는 신기하게도 투자 시장에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2절 말씀은 분산 투자의 고전적인 원리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모든 자산을 한 곳에 두지 말고 위험을 분산하라는 투자 원리를 설명할 때 인용이 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재정에 관한 부분은 영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안에 있기 때문에 영적이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역과 세상적인 영역으로 떼어서 생각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 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태복음 6:21). 재정은 우리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재정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전도서 1
김정훈 목사
Oct 17, 2025
전도서 10장
오늘 본문은 1절이 전체 장의 핵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은 파리들이 향기름을 악취가 나게 만드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느니라.” 보잘것없는 죽은 파리가 향기름 전체를 악취가 나게 만듭니다. 한 번의 작은 실수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처럼, 작은 어리석음이 지헤와 존귀를 난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왼손을 주로 쓰시는 분들에게는 섭섭하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오른쪽은 능력과 보호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리고 왼쪽은 반대의 의미를 가집니다 (마태복음 25장 양과 염소의 비유 참고).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가 오른쪽과 왼쪽이 다른 것처럼 서로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지혜자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공손하며 오래 참습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쉽게 화를 내고 교만한 자세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미묘한 차이이지만, 그
김정훈 목사
Oct 16, 2025
전도서 9장
“메타인지” (metacognition) 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인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 혹은 ‘인식에 대한 인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가 메타인지에 해당합니다.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자신을 포함한 세상을 관찰하는 것과 비슷하고 볼 수 있습니다. 전도서 9장을 묵상하면서, 전도자가 세상을 한 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도자가 세상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발견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 선한 자와 부정한 자, 예배를 드리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나 모두가 동일한 운명 (destiny) 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절).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운명은, 인생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3절). 죽음
김정훈 목사
Oct 15, 2025
전도서 8장
이 세상에는 이해되지 않는 불공평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악인의 형통함과 의인의 고통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듭니다. “왜 악한 사람은 잘 되고, 선한 사람은 고생할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유한함으로 인해서 생기는 질문입니다. 마치 영원을 사모하지만 영원을 가지지 못한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불합리한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 내가 하나님의 모든 행사를 살펴 보니 해 아래에서 행해지는 일을 사람이 능히 알아낼 수 없도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 알아보려고 할지라도 능히 알지 못하나니 비록 지혜자가 아노라 할지라도 능히 알아내지 못하리로다” (17절). 우리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 참된 지혜자의 모습입
김정훈 목사
Oct 14, 2025
전도서 7장
전도서 7장은 지혜에 관한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전도서 전체의 주제가 인생의 허무함이라면, 오늘 본문인 전도서 7장은 인생의 허무 가운데에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보여줍니다. 1-14절에는 인생의 여러 상황 가운데 무엇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지 알려주고 있으며, 15-29절에는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나타냅니다. 좋은 인격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향기나는 좋은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고사성어 중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의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죽음이 불확실한 인생을 맞이하는 출생보다 낫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초상집이 잔칫집보다 낫다는 것은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김정훈 목사
Oct 13, 2025
전도서 6장
우리 속담 중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양이 차지 않는 독처럼,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도 성과가 없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관용어입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6장에는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자기 만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 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정작 그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힘들어 합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아닌 풍족한 가운데 허무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갑자기 닥친 재앙이나 심리적인 문제 등이 원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3절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수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를 하는 복을 받았지만 그의 영혼은 만족하지 못
김정훈 목사
Oct 11, 2025
전도서 5장
오늘 본문 1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고, 솔로몬의 대에 와서 성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불렀던 까닭은 성전 안에 위치한 지성소(the Holy of Holies)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고 굵은 휘장으로 성전의 다른 장소와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집에서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들어갈 때 신중하여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잠잠히 서며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김정훈 목사
Oct 10, 2025
전도서 4장
팬데믹이 끝난 지도 벌써 2년 반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팬데믹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심리적인 외로움이 생각보다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한 온라인 만남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문명의 이기가 삶을 편하게는 하지만, 우리의 외로움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4장에서 솔로몬 왕은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모순을 인생의 또 다른 허무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열심히 수고하며 살았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8절) 무한 경쟁 사회에서 대부분 ‘혼자서 잘 되는 것’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김정훈 목사
Oct 9, 2025
전도서 3장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두 개의 단어로 이해를 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는 둘 다 시간으로 해석이 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릅니다. 크로노스는 객관적이고 양적인 시간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으로 연대기적 시간이며, 초분 단위로 측정이 가능합니다. 카이로스는 주관적이고 질적인 시간으로 우리에게는 기회라는 의미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있었던 순간 혹은 중요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순간 등이 카이로스에 해당합니다. 전도서 3장은 히브리어로 적혀져 있는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때”를 그리스어로 크로노스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혹은 카이로스로 해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때”는 히브리어로 “에트”인데 단순한 시간을 나타내는 일반 명사입니다. 그리스어처럼 시간에 대한 개념을 둘로 구
김정훈 목사
Oct 8, 2025
전도서 2장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을 나타낼 때 “희로애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한자를 풀자면, “기쁠 희, 성낼 로, 슬플 애, 즐길 락” 입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2장에서는 이 감정들 중에서 특별히 ‘락’에 관해서 전도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기록된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라는 문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즐거움으로 너를 시험할 것이다”로 해석이 됩니다. 이는 “락”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즐거움을 누리게 해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전도자가 경험하는 즐거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1절에 전도자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어서 놀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는데, “욜로” (YOLO) 라고 부릅니다. You Only Live
김정훈 목사
Oct 7, 2025
전도서 1장
오늘부터 전도서 묵상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 왕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다음과 같이 전도서를 소개합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서는 솔로몬의 생애 후반기에 기록이 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생의 모든 영역을 경험한 왕이 참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지혜, 인생의 즐거움, 노동의 수고, 재물과 부요 등, 이 모든 것들이 덧없음을 전도자는 말합니다. 전도서는 결론적으로 창조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우리 인생의 참된 의미인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 2절의 말씀은 전도서 전체의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히브리어로 ‘헛됨’을 나타내는 단어인 “헤벨”은 안개, 숨결, 공허함, 속이 텅빈 상태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는 덧없음을 의미합니다. 전도자가
김정훈 목사
Oct 6, 2025
아모스 9장
아모스서 9장은 심판 선언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 함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최종 심판에 대한 말씀은 다섯 번째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7장에서 메뚜기 재앙, 불 재앙, 다림줄 환상을 기록하고 있고, 8장에서 여름 과일 광주리 환상이, 그리고 오늘 본문인 9장에는 제단 곁에 서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환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제단에서부터 이루어졌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적어도 성전 혹은 제단에는 없어야 하는 것인 오히려 맞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먼저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인식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구원파라는 이단의 사상처럼,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
김정훈 목사
Oct 4, 2025
아모스 8장
전 장에 등장하는 세 개의 환상에 이어서, 본 장에는 여름 과일 광주리 환상이 등장합니다. 왜 하필 여름 과일에 대한 환상이 기록되었을까 궁금하실 수 있는데, 히브리어로 “여름 과일”의 발음이 ‘카이츠’인데, 이는 히브리어의 “끝”이라는 단어인 ‘케츠’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2절). 언어의 유희를 사용하여 심판의 때 즉 끝이 이르렀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겉으로 보기에는 여름 과일처럼 번영하고 있지만, 실상은 부정과 부패로 인해 그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한다는 것도 언어 유희와 맥을 함께 하는 비유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씀합니다. 심판의 대상을 이렇게 부릅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고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부와 권력을 사회의 정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
김정훈 목사
Oct 3, 2025
아모스 7장
오늘 본문 말씀에는 아모스 선지자가 보았던 세 개의 환상과 아마샤 제사장의 정치적인 압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환상은 메뚜기 떼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어버리는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가 이스라엘(야곱)을 위해서 중보하며 이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고 메뚜기 재앙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환상은 큰 불로 인한 재앙이었습니다. 불이 일어나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는 엄청난 환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 선지자는 이 재앙도 또한 떠나가도록 하나님께 간청했습니다.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5절).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셨고 불의 재앙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번째 환상은 다림줄로 이스라엘 백성을 측량하는 환상이었습니다. 다림줄은 무거운 추를 줄 끝에 매달아서 벽이나 건물의 수직 여부를 확인하는 도구
김정훈 목사
Oct 2, 2025
아모스 6장
우리는 물질적인 축복과 평안한 삶을 복되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이 평안한 삶은 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복의 기준이 상황이 되면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원리에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복의 기준이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될 때, 우리는 상황의 좋고 나쁨이 아닌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를 따라 복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1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대상이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입니다. 개역한글은 “시온에서 안일한 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백성의 지도자들로 가진 것이 많아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한 것입니다. 교만하다고 할 수도 있고 안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이 아닌 그들의 지위와 축적된 부로 마음이 평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화려한 삶을 살았는지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어린 양과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자기
김정훈 목사
Oct 1, 2025
아모스 5장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애가”란 슬픔의 노래를 의미하며, 히브리어로는 “어찌하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애가의 형태로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왕국은 경제적으로는 가장 활발했던 시대였기에 사람들은 나라가 망할 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인 화려함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적인 부패로 병들어 버린 사회를 바라보시며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며 살리라”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아닌 구원을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 길은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이었고, 6절은 아
김정훈 목사
Sep 30, 2025
아모스 4장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산의 암소들”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에서 사치와 방종을 일삼던 여인들을 지칭한다고 해석하거나, 북이스라엘을 여성형으로 보고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바산은 이스라엘 북동부에 위치한 비옥한 고원 지대로 목축업이 유명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 자란 살진 암소들을 이스라엘의 권세 있는 여자들로 비유한 것입니다. 혹은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는 이들에 대한 심판은 “하르몬”에 던져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르몬이 어디인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문맥상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갈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 갈고리 혹은 낚시로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이스라엘에게 임한 여러가지 재앙을 말씀
김정훈 목사
Sep 29, 2025
아모스 3장
유대인 남성들은 ‘비르코트 하샤하르’라는 그들의 아침 기도에서 자신을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 기도문의 배타성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는데, 이를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나를 유대인으로 만드신 주님, 찬양받으소서”라고 기도하는 진보적인 유대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너희만”에 해당하는 단어가 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어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특별히 알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가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연약하고 보
김정훈 목사
Sep 27, 2025
아모스 2장
오늘 본문은 어제 묵상한 1장에서 시작된 열방을 향한 심판 선언의 연속입니다. 1장에서는 다메섹(수리아), 가사(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심판 선언이 있었고, 2장에서는 모압, 남유다,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순서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마지막에 둔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모압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드는 잔인한 일을 행합니다 (1절).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잔인함이 심판을 받는 이유가 됩니다. 열방에 대한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의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인 율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을 주셔서, 그 양심이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2:14-15 참고). 따라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은,
김정훈 목사
Sep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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