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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1-31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요? 각자 다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전,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으로 잘 알려진 장면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제사를 드리고, 양을 각 가정으로 가져가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이 유월절은 이집트에 내렸던 열 가지 재앙 중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로 당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가정은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알려주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각 가정의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발랐을 때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을 믿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마지막 만찬에서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예식으로 떡은 주님의 몸이며 잔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사건이 이제 곧 다가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향유 옥합을 깨뜨렸던 여인을 복음과 함께 기억하라고 하신 이유도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이 왔으며 향유를 깨뜨린 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전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중한 제자들과 마지막을 함께 하셨고, 주님의 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에 대한 예언과 함께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비록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여전히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을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그는 결국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우리도 나 자신의 힘을 의지할 때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준비하셨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던 여인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교하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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