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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2장

1987년에 있었던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은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운영하던 오대양 공예품 공장에서 총 32명이 집단 자살한 것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미국에서도 있었는데, 1993년 텍사스 웨이코에 사이비 종교 집단이었던 다윗교가 미연방수사국과 대치하다가 교주와 대부분의 다윗교도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잘못된 종말론에 세뇌를 당한 광신도들이 사이비 교주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종말론은 많은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고, 사이비 집단이나 이단 종교에서 사람들을 조종하는 도구로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불안한 사회적 요소들을 이용해 종말론을 내세우며,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재산과 가족까지 바쳐야 한다는 세뇌를 합니다. 잘못된 종말론은 잘못된 구원론으로 이어지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초대교회 당시에도 예수님의 재림을 악용하는 무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시면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말하는 무리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것으로 성도들을 두렵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생각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와 때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재림 전에 나타날 사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멸망의 아들 즉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3-4절).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것임을 사도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무척이나 기쁜 일입니다.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산 자들도 몸이 변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놀라운 순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을 왜곡하는 자들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악용합니다.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을 이용해서,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길이 십자가의 은혜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십자가의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고,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3절).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 외에 다른 것은 모두 거짓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지만, 이단 사상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를 담대하게 하지만, 이단 사상은 우리로 구원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구원의 확신을 다시 한번 확인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2:16 새번역).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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