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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후서 1장

데살로니가에 서신을 보내고 얼마 되지 않아 사도 바울은 또 다른 서신을 보냅니다. 앞서 보낸 서신을 데살로니가전서, 이후에 보낸 편지를 데살로니가후서로 성경은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두 서신을 보냈을 때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회였지만, 유대인들의 지속적인 박해를 견디며 신앙을 지켰던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두 번이나 서신을 보낸 이유는 이들이 직면한 몇 가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교회를 향한 핍박을 믿음으로 이겨낼 것과 종말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바로 잡기 위해서 이 편지를 적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박해를 받고 있는 교회의 성도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하는 것이었다면, 데살로니가후서에서는 종말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바로 잡아 교회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는 교회의 성도들이 겪고 있는 박해와 환난에 관해서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경험하는 박해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교회에 자랑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고난과 핍박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5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속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이미 주어진 것이지만, 이를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멸망의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아직 기회가 있지만, 끝까지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은 구원의 기회를 결국 잃어버리기 때문에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복음의 양면성으로 본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을 더 명확하게 가르는 선이 됩니다. 복음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적대시하여 핍박하는 자들은 결국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박해를 받는 자들은 지금은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환난과 핍박은 하나님의 심판의 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현재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난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모두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0-12).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팔복에도 이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수고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겪게 되는 모든 고난을 하나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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