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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5장

오늘 본문 1절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집”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고, 솔로몬의 대에 와서 성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의 집으로 불렀던 까닭은 성전 안에 위치한 지성소(the Holy of Holies)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곳이라고 불리던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고 굵은 휘장으로 성전의 다른 장소와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셨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의 집에서 “네 발을 삼갈지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이 계신 성전에 들어갈 때 신중하여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잠잠히 서며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로 서는가에 따라서 지혜자가 될 수도 있고 우매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본 자세라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해서 스스로 말을 적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대화의 기본은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기도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서원의 뜻은 하나님과 약속을 한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이루시어 언약을 항상 이루시는 것처럼, 우리도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만약 지키지 못할 서원이라면 처음부터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에는 재물을 따르는 것이 허무한 일임을 전도자는 말합니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5절). 우리가 가진 재물은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쓰는 것입니다. 물론 유산으로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죽음 앞에서 재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죽을 때 그 재물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재물과 부요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19절).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선물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재물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바꾸어 줍니다. 재물을 대할 때 이기적인 욕심이 아닌 감사로 대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묵상에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 방식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고 방식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루 아침에 우리의 사고 방식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때 지혜 있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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