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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4장

팬데믹이 끝난 지도 벌써 2년 반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팬데믹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심리적인 외로움이 생각보다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정상적인 인간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를 통한 온라인 만남이 일상화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문명의 이기가 삶을 편하게는 하지만, 우리의 외로움까지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4장에서 솔로몬 왕은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모순을 인생의 또 다른 허무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이 열심히 수고하며 살았지만, 결국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8절) 무한 경쟁 사회에서 대부분 ‘혼자서 잘 되는 것’을 성공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를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0절)

하나님께서 복을 전달하시는 영적 원리는 관계를 통한 축복입니다. 혹시 한 사람이 넘어져도 그의 동무가 그를 붙들어 일으킵니다 (10절). 혼자서는 춥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합니다 (11절).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2절).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복입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소중한 가족, 친구, 멘토 등을 생각하시며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교회를 생각하시며 사랑으로 하나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중보하며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유한한 존재로 이 땅을 살아가지만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가치는 바로 사랑에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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