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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2장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을 나타낼 때 “희로애락”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한자를 풀자면, “기쁠 희, 성낼 로, 슬플 애, 즐길 락” 입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2장에서는 이 감정들 중에서 특별히 ‘락’에 관해서 전도자가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기록된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라는 문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내가 즐거움으로 너를 시험할 것이다”로 해석이 됩니다. 이는 “락”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즐거움을 누리게 해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전도자가 경험하는 즐거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11절에 전도자가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어서 놀랐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는데, “욜로” (YOLO) 라고 부릅니다. You Only Live Once 의 줄임말로 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의 행복을 즐기며 살자라는 신조어입니다. 특별히 쇼셜미디어의 발달로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누구보다도 멋있게 욜로의 삶을 살았던 자가 전도서의 저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내린 결론이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아직 솔로몬 왕처럼 이 세상의 즐거움을 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부러울 따름일까요? 소비를 하는 것이 곧 즐거움이라는 근시안적 생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 모든 수고에 대한 몫으로 나 스스로 즐기는 것이라는 보상 심리가 너무 강한 것일까요? 전도자는 이 모든 즐거움을 다 경험했으나 그 끝은 결국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은 허무함이었습니다.

12-17절에서는 지혜자와 우매자를 비교했을 때 지혜가 우매보다 뛰어남이 빛이 어둠보다 뛰어남 같지만, 결국 그 끝은 둘 다 장래 세대에서 기억함을 얻지 못합니다. 지혜자의 죽음과 우매자의 죽음이 같은 이유입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도 그 끝은 바랍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18-26절은 한국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일에 수고와 열심을 아끼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3절). 열심히 일을 하고 수고를 했지만 결과는 다른 사람이 취하는 억울함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립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4절).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일상의 작은 행복조차도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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