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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2장

오늘 본문은 어제 묵상한 1장에서 시작된 열방을 향한 심판 선언의 연속입니다. 1장에서는 다메섹(수리아), 가사(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한 심판 선언이 있었고, 2장에서는 모압, 남유다,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선언으로 이어집니다. 순서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마지막에 둔 이유가 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모압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드는 잔인한 일을 행합니다 (1절).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잔인함이 심판을 받는 이유가 됩니다. 열방에 대한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의 기준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법인 율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을 주셔서, 그 양심이 율법과 같은 기능을 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2:14-15 참고). 따라서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잔혹한 행위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열방에 대한 심판 선언이 모압에서 끝이 나고, 이제 유다에 대한 심판으로 넘어갑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유다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다른 이방인들과 구별이 되는 점은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을 말씀합니다 (4절). 이방인들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어긴 것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았다면, 유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여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해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죄악의 모습은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발견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 세상 사람보다 더 큰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신 한 켤레에 팔고 (6절), 힘 없고 연약한 자를 짓밟고 (7절), 음행을 일삼으며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7–8절). 하나님께서 이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가나안 땅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로 예언하지 못하게 하고, 구별되어 정결한 나실인을 술로 부정하게 하였습니다 (9–12절).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나 하나님을 배신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보다 죄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묵상과 기도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보다 죄를 더 사랑하는 삶의 영역이 있다면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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