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전도서 6장

우리 속담 중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어도 양이 차지 않는 독처럼, 노력이나 시간을 들여도 성과가 없는 상황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관용어입니다. 오늘 본문인 전도서 6장에는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자기 만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 부럽지 않게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도 정작 그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힘들어 합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의 고통이 아닌 풍족한 가운데 허무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2절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릅니다. 갑자기 닥친 재앙이나 심리적인 문제 등이 원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3절에 등장하는 어떤 사람은 수많은 자녀를 낳고 장수를 하는 복을 받았지만 그의 영혼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외적 조건으로 인해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실제 상태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마음을 식욕과 비교를 했습니다. “사람의 수고는 다 자기의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채울 수 없느니라” (7절).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채우면 채울수록 더 커집니다.

9절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데, 공통적으로 “눈으로 보는 것”은 현재에 만족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공상하는 것”은 영혼이 원하는 것을 쫓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여기에 있지만, 지혜자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채울 수 없는 욕망을 해결할 수는 없기에 모든 것이 허무하다 말합니다.    

우리가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참된 만족으로 가는 길입니다.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 안에는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 (void) 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도자가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만족하는 것은 하나님을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