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전도서 7장

전도서 7장은 지혜에 관한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전도서 전체의 주제가 인생의 허무함이라면, 오늘 본문인 전도서 7장은 인생의 허무 가운데에서 지혜롭게 사는 길을 보여줍니다. 1-14절에는 인생의 여러 상황 가운데 무엇이 우리에게 더 유익한지 알려주고 있으며, 15-29절에는 인간의 한계를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나타냅니다. 좋은 인격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향기나는 좋은 기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고사성어 중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의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죽음이 불확실한 인생을 맞이하는 출생보다 낫다고 전도자는 말합니다.

초상집이 잔칫집보다 낫다는 것은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눈 앞에 즐거움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탐욕과 뇌물은 이러한 지혜로는 자들이라도 어리석게 만듭니다. 급한 마음으로 화를 내지 말고 인내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와 돈을 비교한 것은 둘 다 자신을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인데, 지혜가 더 유익한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보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잘 될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복된 삶입니다. 인생의 모든 날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5절 이하의 말씀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잡힌 선택을 하는 것이 지혜인 것을 말합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자기 의에 사로잡히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도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라는 말씀은 무절제하게 육신의 정욕을 따르는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선택을 모두 피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 7장 마지막 부분에 나타난 여자에 대한 말씀은 난해한 구절이며,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구절이 일반 여성에 대해 비하하거나 비판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논리로 보아도, 만약 여자가 문제라면 그 여자의 유혹에 넘어간 남자도 동일한 죄인입니다. 문맥의 흐름으로 이 구절을 해석하자면, 죄의 유혹에서 자유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구절은 성별의 문제가 아닌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죄의 본성을 다룬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