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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3장

유대인 남성들은 ‘비르코트 하샤하르’라는 그들의 아침 기도에서 자신을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 기도문의 배타성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는데, 이를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나를 유대인으로 만드신 주님, 찬양받으소서”라고 기도하는 진보적인 유대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을 보시면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너희만”에 해당하는 단어가 문장의 맨 앞에 나와 있어서 강조되어 있습니다. 모든 족속 중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특별히 알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가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 민족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열방에 전하는 나라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중요한 책임을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으리라는 오만함으로 죄악을 저지르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특권에 대한 의식만 있었지 책임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일곱 개의 수사적 질문에서 (3-8절),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이 질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이유가 그들의 죄악 때문인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7-8절). 사자의 부르짖음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으니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을 뜻합니다. 아스돗(블레셋)과 애굽을 증인으로 삼아 북이스라엘의 포학과 겁탈을 증거하라 합니다.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3절). 또한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나타내는 “벧엘의 제단”과 그들의 권세를 나타내는 “상아 궁”을 무너뜨릴 것을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신약의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아서 감사하다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유대인들이 자신을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자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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