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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장

오늘 본문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탄식으로 시작합니다. “애가”란 슬픔의 노래를 의미하며, 히브리어로는 “어찌하여”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애가의 형태로 예언을 했던 것입니다. 당시 북왕국은 경제적으로는 가장 활발했던 시대였기에 사람들은 나라가 망할 것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보여지는 외적인 화려함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내적인 부패로 병들어 버린 사회를 바라보시며 애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며 살리라” (4절).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아닌 구원을 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 길은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이었고, 6절은 아모스 선지자가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그들은 살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벧엘과 길갈, 브엘세바는 그들의 우상숭배의 본거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고,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과 회개를 함께 말씀하시는 이유는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택할 것인지 우상을 택할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지만,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하십니다 (18-20절).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자들에게는 빛이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어두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초청은 오늘날에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길과 반대로 예수님을 부정하고 심판에 이르는 길,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21-23절).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24절). 그 근본부터 악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한 마음을 허락하십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찾는 자, 그래서 어둠이 아닌 빛에 거하며 구원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과 공의를 이 땅에서 실천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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