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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5장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장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받을 대상들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와 이들의 왕족들까지 포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 앞서 4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쳐야 할 영적 지도자들이 오히려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하도록 이끄는 올무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참고로 미스바는 요단강 동쪽, 다볼은 서쪽을 가리킵니다. 이 지명을 언급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대표하는 지파이며, 앞서 제사장과 같이 이스라엘 족속을 잘 이끌어야 할 리더들의 타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5절에 남유다 왕국도 언급이 된 것을 통해 북이스라엘의 범죄에 이들도 동참하게 될 것을 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리더들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는 마음으로 우상 숭배를 일삼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4절). 이렇게 영적 지도자들이 백성의 올무가 되고, 민족의 리더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양 떼와 소 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더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이들의 예배가 형식적인 에배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6절).

8절 이하부터의 내용은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의 전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전쟁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영적인 타락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유다에서도 사회의 정의가 무너지는데 앞장서는 무리가 지도자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절). 에브랑임과 유다, 북왕국과 남왕국 모두 병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3절).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 앗수르의 야렙 왕을 찾아갔습니다. 야렙 왕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아닌 앗수르에게 의지했다는 것은 명확합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한 가지는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 (15절). 어느 사회나 리더가 중요합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이 넘어지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칠 자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과 함께 우리가 속한 가정과 교회, 직장과 여러 공동체들,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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