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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망이 끝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첫번째 반응은 누군가가 예수님을 무덤에서 가져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우리는 종종 부정적인 해석을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이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했습니다. 마리아는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녀 곁에 서 계셨지만, 그녀는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16절).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녀의 눈이 열립니다. 부활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나를 아시는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분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부활 신앙은 지금도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같은 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닫힌 문을 통과해 가운데 서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절) 였습니다. 부활은 정죄가 아니라 평강으로 찾아옵니다. 실패한 제자들에게 사명을 다시 맡기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1절).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손에 못 자국을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찾아오셔서 그가 요구한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도마는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8절). 앞서 마리아와 제자들처럼 도마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됩니다. 이 고백은 요한복음 전체의 클라이맥스입니다. 태초에 계셨던 말씀이 (요 1:1), 이제 나의 주님이 됩니다. 부활은 신학적 선언을 개인적 고백으로 바꿉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쓴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제자들의 증언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비록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믿는 복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요한복음 18:28-40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서 계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은 심문을 받는 죄인이고, 빌라도는 권력을 가진 재판관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영적인 실상을 보여줍니다. 묶여 서 계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왕이시고, 판단하는 자처럼 보이는 빌라도는 오히려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불법과 타협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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