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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0장

오늘 본문 1절에 등장하는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는 얼핏 보면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맺는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열매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한 열매였습니다. 이들이 맺은 열매로 우상 숭배를 위한 주상과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두 마음”을 품었다고 표현한 것은 (2절), 이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살은 풍요롭고 번영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3절은 백성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내뱉는 고백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던 것을 포로로 끌려갈 때 깨닫게 됩니다. 왕이 없기도 하지만, 왕이 있다고 해도 백성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3절은 미래에 겪게 될 고난에 대한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5절과 8절에 사용된 “벧아웬” 혹은 “아웬의 산당”은 하나님의 집이 우상 숭배하는 장소로 바뀐 것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벧(베트)는 집을 뜻하며, 아웬은 사악함과 우상을 뜻합니다. 원래 이곳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었지만 이제는 “벧아웬”이라는 사악한 우상의 집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던 송아지 우상은 이제 앗수르에 전리품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들의 산당은 파괴될 것이며 우상을 섬기던 제단에는 가시와 찔레가 덮을 것입니다.

9절에 기록된 “기브아 시대”는 앞서 9장에서도 언급이 되었는데, 사사 시대에 베냐민 지파의 땅에 속한 성읍이었던 기브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집단 성폭행을 했고, 그 첩은 죽게 됩니다. 레위인은 그녀의 시신을 열두 조각으로 나누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보내고, 결국 베냐민 지파는 크게 희생을 당합니다 (사사기 19-21장). 이 충격적인 사건은 사사 시대의 타락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사사 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죄는 반복되어 이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살 길을 보여주십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2절).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것이 회복이 됩니다. 묵은 땅을 엎는다는 것은 과거에 가졌던 악한 마음에서 떠나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공의를 비처럼 내리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통치로 다스리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세상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두 마음을 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언제라도 돌아오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되는 그 때에도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복된 묵상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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