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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7장

모세가 출애굽 과정에서 걱정했던 한가지는 그의 입이 둔하여 모세가 전하는 말을 바로가 듣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제 묵상했던 출애굽기 6장에도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두번이나 등장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믿음을 더하시기 위해서 두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 첫째는 모세가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신 것과, 둘째는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의 대언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1절 참고). 여기서 “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섰을 때,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앞에 선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입을 대신하는 대변인으로 아론이 모세와 함께 했습니다. 모세의 연약함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권위가 모세에게 주어졌고, 모세를 돕는 동역자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은 난해한 성경 구절입니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완악하게 만드셨다라는 것일까요? 거룩하시고 선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악하게 만드신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칼뱅은 이 부분에 대해서 “마음의 완악함은 사람의 죄이지만,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24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는 우상 숭배와 육체의 정욕으로 이미 마음이 완악해진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들의 죄악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은 바로의 죄이고,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과 22절에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라는 구절에서 이미 바로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완악해진 바로를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첫째 재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이 바로에게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나의 마음이 딱딱하지 않은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완악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지 못하는 상태까지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편 51:10).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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