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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

04/24 묵상 가이드


 

찬송가 438장의 3절 가사입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 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곳은 광야에 흔히 있는 떨기나무에서 였습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2절).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떨기나무였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그곳은 더 이상 평범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땅”이었습니다 (5절).

출애굽기 2장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그들을 기억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출애굽의 서막이 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심으로 출애굽을 시작하십니다. 어쩌면 모세는 광야에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절망에 빠져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애굽에서 간혹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며, 이스라엘 형제들을 위해서 본인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여전히 괴로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이란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광야의 떨기나무는 평범한 하루의 일상이었지만 민족을 향한 안타까움과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한 절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 이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개인적인 유익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늘 한 개인을 향해 있지만, 그 부르심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80년이나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모세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1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이 질문에 두가지 약속을 허락하십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모세와 반드시 함께 있으시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출애굽 후 모세와 백성이 다시 호렙 산에서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12절).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책임지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또 다른 질문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한 사람에게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알려주시는 것을 목격합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14절).

오늘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모세가 만났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을까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모세를 부르셨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를 부르신다면,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땅에 신을 벗고 설 수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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