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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1장

May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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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일을 이루실 때 어떻게 사람들을 통해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시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 관한 모든 플랜을 모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성막의 블루 프린트를 실제로 만들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기구들을 만들 유다 지파의 브살렐과 단 지파의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위한 지혜와 총명, 지식과 재주를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내 것으로 인식을 합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곧 나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우리의 가치는 내 재능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러한 재능을 주셨는지 그 목적을 이해하는데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나를 지명하여 부르신 목적 의식이 곧 나의 가치가 됩니다. 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을 이 땅에서 이루는데 있습니다. 다만 그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무릇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11절).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그 말씀대로 성막과 기구들을 만드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룰 때 그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서 또 말씀하십니다. 유대인 전통에는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라의 주권을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잃어버리고, 주후 1948년에 국가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2500년 이상을 나라 없이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그들의 민족으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안식일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원한 언약의 표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셨으니 하나님의 백성도 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은 안식일이 아닌 주일 (Lord’s Day) 을 지킵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날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예배하고 성찬을 나누었습니다.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행 20:7). 여기서 주간의 첫날은 복음서에 기록된 “안식 후 첫날” (마 28:1, 요 20:1) 이며 곧 주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일을 안식일을 대체하는 날로 인식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부활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 날로 보아야 합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완성이며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오늘 묵상을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참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재능과 능력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충만함으로 오늘 하루를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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