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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2장

자유와 방종의 차이는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책임에 있습니다. 자유는 법과 규범을 존중하며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지만, 방종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출애굽기 22장은 단순히 생각하면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할 때 따라야 할 규범을 기록한 것이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소유를 마음대로 취할 수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배상해야 할 범위가 달라지지만, 도둑질을 한 것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구절이 있다면 21절부터 시작되는 약자에 대한 규범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21-22절).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는 규정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들을 친히 돌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회의 약자들이 부르짖을 때, 이들의 절규를 들으시겠다 약속하셨습니다 (23절). 또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줄 때는 이자를 받지 말며, 이웃이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주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이 마음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와 고아의 보호자가 되시며,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것을 베푸시며, 나그네를 잘 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의 완악한 마음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반대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유력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사회의 약자들은 무시하고 업신여길 때가 많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17).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찾으십니다.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돌보는 것은 하나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고 잠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힘든 사람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 주십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시편 41:1). 그리고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며, 이들을 환난 날에 건지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작은 자에게 물 한잔이라도 베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살아가시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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