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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장

  • May 14, 2025
  • 2 min read

오늘 본문에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십계명이란 말 그대로 열개의 계명을 뜻합니다. 그리고 계명이란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삶의 규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을 대하면서 잊어버리기 쉬운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십계명이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이 20장에서 십계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언약이라는 큰 그림 안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언약을 이해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로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이나 계약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약속은 기본적으로 꼭 지켜야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받게 되는 불이익이 바로 나타나지는 않을 때가 많습니다. 계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을 불이행했을 때 계약서에 기록된 대로 손해 배상을 하면 됩니다. 하지만 언약은 목숨을 건 약속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이 언약을 체결할 때 동물을 쪼개서 그 사이를 지나며 맹세를 했습니다 (창세기 15장 참고). 그 뜻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동물이 쪼개어진 것처럼 나도 죽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약은 목숨을 건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을 시내 산으로 부르시고 십계명을 주신 것은 언약의 체결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신적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 약속입니다. 만약 이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여러가지 자세한 율법이 아니라, 단 열개의 계명조차도 우리는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언약을 지키지 못한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음이 우리가 치러야 할 죽음의 값을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의미합니다.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내 존재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관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억지로 지켜야 하는 족쇄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라며,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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