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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3장

  • May 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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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 연회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했던 말은 최상품의 포도주가 이제서야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2:10 참고). 영어 표현에 “save the best for last” 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마지막까지 아껴둔다 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좋은 것을 구별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최상품은 특별한 것이며 나의 소유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 하십니다 (2절). 초태생(처음 난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거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는 유월절 사건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내려졌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초태생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서 유월절과 무교절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 하십니다. 손의 기호와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입에서 떠나지 않을 것을 명령하십니다 (9, 16절). 전통 유대인들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말씀을 적은 종이를 경문갑에 넣어 그들의 손에 매고 이마에 두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6 참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초태생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대속해 주셨고, 이집트에서 출애굽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요 3:16 참고).

이렇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그 때부터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살던 해변 지역이 아닌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17-18절).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은 전쟁을 치를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요셉의 유언을 기억하여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떠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21-22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막의 기후에 알맞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해를 가려주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가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성령님께서 우리를 세밀하게 간섭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벧전 2:9-10 참고).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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