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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1장

  • May 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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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의인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베풀어 주십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에스겔 18:23).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1-32).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처음 난 것들이 죽을 것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이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것은 애굽 사람들의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바로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회개할 기회를 모두 놓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그대로 두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바로는 메뚜기 재앙에서 죄를 자백했지만 결국 돌이키지 않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끝까지 불순종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재앙만 남았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마지막 경고를 전합니다. 물론 이스라엘 자손은 구별하셔서 이 재앙이 지나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처음 난 것들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는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어느 문화에서나 장자에 대한 특별한 권리가 있지만, 애굽에서 장자는 영혼의 계승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그들의 정신과 혼과 삶이 처음 난 것에 내포되어 전수되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특별히 바로의 장자라는 것은 그 자체로 왕조의 권위가 세습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마지막 재앙은 애굽 사람들의 교만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애굽의 왕조가 태양신의 후손이라는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로마서 3:23 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도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에게 내려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묵상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깨달으시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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