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창세기 7장

마침내 심판의 때가 이르렀습니다.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1-22절).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던 것과 전혀 반대되는 과정입니다 (2:7). 

하지만 이 심판의 과정에서도 예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3절). 방주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 방주 바깥은 대홍수의 심판으로 지면의 모든 생물이 죽었다면, 방주 안에 있던 자들은 심판을 피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마지막 때에 생명의 방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마지막 때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 경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깨어서 준비하고 있으라 하십니다 (마 24:44). 노아가 방주를 지은 시간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자는 창세기 6:3에 근거해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고 합니다만 문맥을 봤을 때 120년을 방주 준비 기간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방주를 하루나 이틀에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는 분명 하나님께서 당시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마지막 경고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교회는 방주가 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경고가 됩니다. 토요일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 주체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에 이르기를 기도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