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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이름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성품이 이름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스스로를 부르신 이름입니다 (출애굽기 3:6). 이 이름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하나님의 성품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분의 약속을 이루시는데, 우리는 그동안 창세기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지키셨는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셨던 언약의 말씀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는 것이었습니다 (창 12:1-3). 이 약속은 이삭에게 다시 주어집니다 (창 26:2-4). 그리고 동일한 하나님의 언약이 야곱으로 이어집니다 (창 28:13-15).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은 이제 요셉으로 이어지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야곱의 모든 아들들이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로 세워졌지만, 요셉이 장자의 명분을 가지게 된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상 5:1-2 참고).

모세의 율법에는 장자가 다른 아들에 비해 두 배의 재산을 상속받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21:17). 물론 야곱이 요셉을 축복할 때에 모세의 율법이 제정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지파로 세운 것에서,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두 배의 축복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서 요셉 지파 대신 요셉의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면서, 그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가나안 땅 루스 (벧엘) 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었고 (3절), 둘째는 사랑하는 라헬을 에브랏 (베들레헴) 에서 먼저 장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7절). 야곱에게 루스에서의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영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브랏에서 사건은 가장 마음이 아팠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의 명분을 취하고자 했던 야곱이었지만, 그가 믿음의 조상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생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이 그의 인생에 마지막에 기억했던 것이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과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 야곱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야곱이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가 가장 힘들었던 때에 함께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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