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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8장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을 합니다. 처음 세 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마 1:1-3)

오늘 본문인 창세기 38장은 유다가 어떻게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에게서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들의 이름은 엘과 오난과 셀라였습니다.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해서 다말을 며느리로 맞이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엘이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은 것입니다. 자녀가 없이 형이 죽었을 때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풍습을 ‘형사취수’ 라고 하는데, 당시 가나안에도 이러한 풍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둘째 오난도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결국 셋째인 셀라가 다말과 결혼을 해야 하는데, 유다는 셀라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말을 친정 집으로 보내고 셀라를 숨겼습니다.

다말의 입장에서는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셀라를 그녀의 남편으로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고육책으로 시아버지인 유다에게 다가가 유다로부터 담보물을 받고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유다는 다말을 창녀로 오해했습니다. 이 때 임신하여 낳은 자녀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 그리고 장자인 베레스에서 헤스론으로 또 헤스론에서 람으로 혈통은 이어집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반적 상식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말과 유다를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직관적인 교훈으로 더 크게 다가옵니다. 첫째, 유다는 며느리의 임신 소식을 듣고 다말을 불사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은 유다에게로 결국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덮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 자체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혈통의 순수함이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다와 다말의 모습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는 죄인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이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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