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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2장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다”라는 말은 성경 해석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에서 드러난다.” 구약의 예언과 율법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모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후 1:20) 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재조명했을 때, 그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기나긴 포로생활이 끝이 나고 이스라엘이 회복이 되었을 때 기쁨을 우리는 본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에서 “할례 받지 아니한 자와 부정한 자”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방 군대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다시는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 귀한 이후에도 헬라와 로마의 침략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1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했을 때를 의미합니다. 또한 3절에서 우리가 값없이 속량이 된다는 것도 예수님의 대속 사역의 은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지극히 존귀하게 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기쁨입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너무나 좋은 것이 복음입니다. 어찌 승전했다는 소식을 숨기며, 병에서 나았다는 소식을 숨길 수가 있겠습니까?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7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특사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에 아름다운 발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너무나 귀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눈을 마주보시겠다는 것입니다 (8절).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사랑하는 이의 눈을 마주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백성들의 눈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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