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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0장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마태복음 7:28-29). 예수님에게 가르침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던 이유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진리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8). 예수님의 가르침은 진리의 선포이며, 하나님의 뜻을 가감없이 전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종을 위해 준비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학자들의 혀”입니다 (4절). 학자들의 혀가 무엇인지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니님의 종 메시야가 학자들의 혀를 가졌다면 이는 그가 가르침의 탁월함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 권위가 있는 가르침은 곤고한 자들의 귀를 열어 줍니다. 귀가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귀가 열린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며 나아갈 때에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한 것입니다 (5절).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영적 권위가 있는 가르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웁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서 새로운 정체성이 세워지며, 삶의 목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심한 박해와 핍박이 다가와도 넉넉히 이겨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발견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채찍에 맞으시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귀를 여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길이 예수님의 공생애의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권위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 그대로 삶을 살아내신 분입니다. 가르침과 행함을 함께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깊은 영적 통찰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열방을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대사명에도 가르침에 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20a).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영적 권위와 함께, 우리의 귀가 열려 그 말씀을 지킬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묵묵히 따라갑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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