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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9장

고난주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한 주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의 그 길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이유였습니다.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을 요일별로 정리를 하면, 종려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으로 겸손의 왕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셨고,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월요일에는 성전 정화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화요일에는 성전에서 많은 비유의 말씀으로 가르치셨고, 수요일에는 침묵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 날입니다. 목요일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에서 성만찬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금요일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토요일에는 무덤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주일, 죽으시고 사흘 만에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월요일에는 성전 정화의 사건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가지 주의하셔야 하는 것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성전 정화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있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고, 공관복음에 기록된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 말기 즉 고난주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요 2:13-22, 마 21:12-13, 막 11:15-19, 눅 19:45-48). 성전에 대한 개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의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님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49장의 말씀에서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필연이며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두 번 오시는데, 초림은 하나님의 종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재림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과 행적을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계획을 하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임마누엘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묵상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회복이 되는지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시는지를 묵상하시며,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이유를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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