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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실용주의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고난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유를 찾습니다. 적어도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2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장애를 죄와 연결해서 생각한 것은 꽤 일반적인 통념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서 저주를 받아서 질병 혹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기서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언제 죄를 지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라고 한다면 태중에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것이고, 부모의 죄라고 한다면 조상의 죄 때문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논제를 통해서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들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생각의 흐름을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3절). 에스겔 18장을 읽어 보시면, 하나님께서 조상의 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고치시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시제로 해석을 한다면 과거가 아닌 미래로 우리의 생각을 옮기신 것입니다. 과거의 이유로 인해서 현재의 고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일이 미래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그 자체로 죄입니다. 정죄를 하실 수 있는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을 한 후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남 탓을 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의 이유를 찾기보다 현재에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실로암에서 이 맹인의 눈을 밝히셨습니다. 날 때부터 볼 수 없었던 자가 보게 된 것입니다 (7절). 하지만 이 놀라운 치유의 사건이 안식일에 있었다고 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오히려 죄인으로 몰아갔습니다 (14절). 아이러니한 것은 날 때부터 맹인었던 자는 예수님을 보게 믿게 되었고, 스스로를 볼 수 있는 자로 여겼지만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우리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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