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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1-3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음해하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이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6절). 이들이 예수님에게 했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4-5절) 이 질문이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얻기 위한 시험이 되는 이유는, 만약 예수님께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시면 로마의 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당시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사형 집행권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자를 돌로 치지 말라 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어긴 죄인 취급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교활한 의도를 잘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셔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때 무엇을 쓰셨는지는 기록되지 않아 독자들은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설에는,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이름과 그들이 지었던 죄를 적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시며 하셨던 말씀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7절) 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간음하다 잡힌 그 여자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심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하셨던 말씀 중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 7:3)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가 들보처럼 크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만 지적하며 판단하는 우리의 잘못된 마음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11절 b) 말씀하셨습니다.

12절 이하의 말씀은 영적인 관점으로 읽고 묵상하셔야 이해가 되는 어려운 내용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지만,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신성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래 계셨던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돌아가신다고 했을 때, 아무도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예수님의 신성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증거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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