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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1-36

예수님의 형제들은 누구였을까요? 마태복음 13:55 에 기록된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였습니다. 마가복음 6:3 에도 동일하게 기록이 되어 있고, 누이들도 있었던 것을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그 이후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예수님과 함께 자랐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과 함께 자랐던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5절). 이 구절을 살펴보면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 예수님을 쫓아오던 무리와 예수님을 따르다 떠난 제자들처럼, 형제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무리가 예수님을 떠난 이유는 그들의 배를 책임질 임금으로 삼으려는 것을 예수님께서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었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난 이유도 예수님을 통해 한자리 차지하려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형제들의 말은, 그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사람들로부터 유명해지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앞서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나 제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생각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다고 해서 혹은 예수님의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6절) 예수님께서 아직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시고, 나중에 홀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19절). 그리고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으로 트집을 잡았던 것입니다 (22-23절). 하지만 모세의 율법에서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것을 말씀하시며,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게 귀신이 들렸다는 막말까지 합니다 (20절).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알게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지 못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잡아서 죽이려는 무리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0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증인으로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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