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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0-71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0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예수님의 생명의 떡에 관한 가르침 이후에 있었던 반응입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의 말씀을 어렵다고 했을까요?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메시야에 대한 이해와 예수님의 가르침은 전혀 반대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달랐습니다.

앞서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본 것처럼, 유대인들은 그들의 배를 부르게 할 임금과 같은 메시야를 바랐습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킬 왕을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들의 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메시야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인 죄와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는 메시야의 개념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는 찬란한 영광의 메시야가 아닌 십자가 형벌에서 찢기시는 낮은 자리로 임하시는 메시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이 어렵다는 것은 말씀 자체가 어려운 것도 있겠지만, 예수님을 통해서 한 자리를 차지해 보려고 따랐던 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유익을 위할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6절).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67절) 오늘 본문의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고 하더라도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겠습니까?

우리는 모두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68-69절). 예수님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을 누리고 또 그 생명을 나누어 주는 삶을 의미합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다시 한번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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