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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1-30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3절). 예수님 당시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과 요단 강을 따라 멀리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이 3일 정도 걸렸다면 돌아가는 길은 6일이 걸렸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의 순수 혈통과 신앙 전통을 앞세워 사마리아인을 경멸했습니다 (9절 참고). 하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품었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대표적인 장면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지나 갈릴리로 가기로 하셨습니다 (4절).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자의 대화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지역의 ‘수가’라 하는 동네에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을 달라 하셨습니다. 이는 육체에 관련된 영역입니다. 갈증이 나고 배가 고플 때 우리는 물이 필요하고 음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목적은 이 여인의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10절에 등장하는 “생수”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물병에 담긴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근원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Bottled water 가 아니라 living water 입니다.

10-15절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예수님의 이러한 의도와 상관없이 우물가의 여인은 계속해서 육체에 관련된 물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영적인 돌파 (break through) 를 선물로 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의 가장 힘들어하고 숨기려고 했던 부분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님) 을 들추어내십니다 (16-18절). 그제서야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영적인 사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19절).

이 때부터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많은 영적인 질문을 합니다. 예배에 관한 것과 메시야에 관한 것을 물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내려가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배의 장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예배의 본질이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나타내지 않으신 자신이 “그리스도 즉 메시야”이신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26절).

사마리아 여인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났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물을 길러 우물가로 나왔던 그녀가 이제는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28절).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 이러한 감격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는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사마리아의 우물가에 한 여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곳을 친히 찾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구원할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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