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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2

오늘 본문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행하신 첫번째 표적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저자인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표적(sign)”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사람들은 기적을 대했을 때 놀라운 현상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표적은 현상 자체가 아닌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마치 운전을 하다가 보게 되는 이정표처럼,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표적이 되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갈릴리에 가나라는 시골 동네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이 혼인 잔치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어머니 그리고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보통 5-7일 동안 열렸습니다.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였으며, 신랑 집안이 모든 음식과 포도주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의 필수 요소였고 잔치를 하는 동안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실수가 아닌 사회적인 수치였습니다. 아마도 예상보다 손님이 많았거나 신랑 집안에서 비용을 감당할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이 상황을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4절). 한국어에서는 “여자여”라는 표현이 거리감이 느껴지고 무례하게 들릴 수 있지만, 헬라어 원어는 오히려 존경의 표현입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정중하게 사용하는 호칭으로 ‘존귀한 여인’이라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때”는 구원을 위한 십자가와 부활의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심으로 예수님의 정체성이 오해를 받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표적을 행하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11절).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돌항아리 여섯에 물을 채우라 하시고, 그 물을 연회장에 가져다주라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고, 사람들은 좋은 포도주라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물이 언제 포도주로 변했는지는 본문에서 정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독자들에게 기적이 아닌 표적을 알려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다는 기적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창조의 주가 되십니다. 그리고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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