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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5:9-27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은 보통 감정을 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에 끌리고, 편안하고, 함께 있고 싶은 느낌에서 사랑이 출발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변하면 사랑도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기 만족이 그 중심에 있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조건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 기준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0절). 예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 기준이 감정이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또한 그 목적이 자기 만족과 필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만족의 감정이 아닌 자원하는 순종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1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서로 사랑함에 기쁨이 있다면 이는 자원하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8절).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가치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주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증거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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