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9-27
- 김정훈 목사
- Feb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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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사랑의 개념은 보통 감정을 그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마음에 끌리고, 편안하고, 함께 있고 싶은 느낌에서 사랑이 출발합니다. 하지만 감정은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감정이 변하면 사랑도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기 만족이 그 중심에 있고,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조건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그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 기준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0절). 예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고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2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그 기준이 감정이 아니라 순종에 있습니다. 또한 그 목적이 자기 만족과 필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이루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 만족의 감정이 아닌 자원하는 순종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1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기쁨이 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서로 사랑함에 기쁨이 있다면 이는 자원하는 순종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는 세상으로부터 환영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8절).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가치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주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을 증거하시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예수님을 증언하시고,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