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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6-31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가리켜 “보혜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보호하고(保) 은혜를 베풀어(惠) 가르치는 스승(師)'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인데, ‘옆에’ (파라) 라는 단어와 ‘부름받은’ (클레토스) 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도움을 주거나 변호를 위해 옆에 붙여준 자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보혜사란 우리를 위해 변호하시는 대언자라는 뜻과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위로하고 도와주시는 조력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나타나 있습니다.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약속인지 알아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7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받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8절) 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과 예수님은 한 분이시며, 오순절 성령의 강림을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0절). 성령님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인격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곧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2절에 등장하는 가룟인 아닌 유다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입니다 (눅 6:16). 여기서 유다가 했던 질문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알려주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영생을 살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어려운 본문이지만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계시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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