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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19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2장부터 예수님의 사역의 방향이 바뀝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1절) 라는 문구에서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이 희생되는 기간으로,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유월절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구체적으로 시작하신 장소는 베다니였습니다. 그 곳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마지막 표적이 있었던 곳이며, 그 증거로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들리셨을 때,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남매인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방법으로 각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2절). 마르다는 힘을 다해 섬겼고, 나사로는 그 존재 자체로 예수님의 능력의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에게 부었습니다. 이 향유의 가치를 가룟 유다는 삼백 데나리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하루치 노동으로 받을 수 있는 값이라고 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한 사람이 삼백 일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가치입니다. 거의 일년치 연봉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것은 마리아 자신은 몰랐겠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준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최고의 예물을 드리는 마리아의 헌신보다 돈을 더 생각했던 것입니다. 유다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다는 말로 그의 위선을 포장한 것입니다. 마르다는 섬겼고 마리아는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사로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표적의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고,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장면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을 하셨습니다 (스가랴 9:9 참고).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길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를 외치며 정치적인 왕을 꿈꾸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동상이몽이라는 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섬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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