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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장

요한복음에서 기적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초자연적 능력을 뜻하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표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요한이 기록한 표적은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1) 물을 포도주로 바꾸심 (2:1-11),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3)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5:1-9), (4)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심 (6:1-14), (5) 물 위를 걸으심 (6:16-21), (6)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고치심 (9:1-7), (7)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심 (11:1-44). 예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20:31 참고).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1장에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장면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병 소식을 듣고도 의도적으로 지체하셨습니다 (1-16절). 나사로가 죽은 후에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먼저 마르다와 대화를 하셨고 (17-27절), 이후 마리아와 대화를 하셨습니다. 마리아와 대화를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우셨고,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리셨습니다 (28-44절). 이 놀라운 표적이 있은 다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죽이려는 무리로 나뉘어졌습니다 (45-57절).

요한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지체하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6절).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라면, 소식을 듣자마자 아픈 사람에게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시간을 더 보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사로와 자매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절).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39절). 이것이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오히려 이틀을 지체하셨던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능력이 있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이 있은 후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어집니다. 많은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려는 모의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기적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믿음으로 반응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생명보다 자기 밥그릇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기적은 하나님의 계시 (표적) 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적 계시 앞에서 사람들은 양분됩니다. 진리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색깔입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일곱 가지 표적을 다시 돌아보며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다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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