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요한복음 10:1-21

요한복음은 공관복음 (마태, 마가, 누가 복음) 과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줍니다. 그 중에서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나는 ~이다” 의 형태를 띤 구절을 7번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I AM statements” 라고 하고, 헬라 원어로는 “에고 에이미” 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일곱 가지 “에고 에이미” 선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2)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3) 나는 양의 문이다 (10:7). (4) 나는 선한 목자다 (10:11). (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7)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1). 이러한 예수님의 선언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출애굽기 3:14) 라고 하신 것과 연결이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며,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I AM” 선언 가운데 두 가지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이 되시며 또한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대 사회의 목축에 관한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바위가 많고 황량한 광야가 많습니다. 그리고 양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양은 시력이 약하고 방향 감각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쉽게 흩어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목자는 양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생명을 책임지는 존재였습니다.

목자가 아침이 되면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데리고 나가고, 밤이 되면 임시로 우리를 만드는데 문이 따로 없이 목자 자신이 문이 되어 입구에 누웠습니다. 양을 해치려는 짐승이나 도둑이 목자를 거치지 않고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생명을 책임지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시는 것도 양의 문이 되시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킵니다. 맹수와 싸우고 길을 잃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밤새 양의 문이 되어 양들을 지킵니다. 하지만 삯꾼은 돈을 받고 일하기 때문에 위험하면 도망갑니다. 양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시는 것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을 암시하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 23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목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심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양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시고, 우리를 위해서 목숨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오늘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깊이 깨닫는 귀한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