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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4장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2 b절). 요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인 앗수르 사람들을 용서하시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앗수르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화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정작 요나 자신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며 두 번째 기회를 받았으면서도, 앗수르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에게 화를 내며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께서는 버릇없는 요나를 벌하시기보다 잘 타이르십니다. 니느웨 성읍을 보려고 그늘 아래에 앉은 요나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박넝쿨을 에비하십니다. 요나는 박넝쿨로 인해 크게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튿날 새벽에 벌레를 예비하시고 요나가 기뻐했던 박넝쿨을 갉아먹게 합니다. 이제 그늘이 사라진 채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뜨거운 동풍과 따가운 햇살은 요나를 혼미하게 합니다. 요나는 사라진 박넝쿨로 인해 하나님께 다시 화를 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하신 말씀이 10-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것에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을 절대 싫어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착한 사람인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도 원래 하나님께 원수 되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요나서는 하나님의 질문과 같은 말씀으로 끝이 납니다. 요나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요나의 성격으로 보았을 때는 여전히 하나님께 화를 냈을 것도 같지만,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며 기도했던 모습에서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을 것도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에 있습니다. 요나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데 여러분 모두 귀하게 사용되시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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