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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3장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1절).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했던 요나에게 하나님의 명령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사십 일이 지나면 임하게 될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니느웨 사람들에게 선포했습니다.

성경에 두 번째 기회를 받았던 많은 성경 인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모세, 다윗, 베드로, 마가 요한 등이 있습니다. 모세는 40세에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지만, 80세에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 후 이를 덮기 위해서 우리야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진심 어린 회개로 두 번째 기회를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그의 마음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 요한은 바울과 함께 했던 1차 선교여행 중 도중에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다시 바울의 인정을 받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딤후 4:11 참고).

요나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입니다 (요나 4:2). 요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이 요나에게는 딜레마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가 이스라엘의 원수인 앗수르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4장 묵상에서 좀 더 깊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인류에게 허락하신 두 번째 기회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회복이 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이며, 영원한 생명을 위한 두 번째 기회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할 수 있는 이 두 번째 기회를 우리는 절대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직도 복음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허락하시는 두 번째 기회는 무엇일지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도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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