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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2장

‘십자가의 요한’ 이라 불리는 16세기 후반에 활동을 했던 스페인 출신의 수도사가 있습니다. 당시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면, 카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자체적인 개혁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러한 카톨릭의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의 중요한 저서로 ‘영혼의 어두운 밤’ (The Dark Night of the Soul) 이 있습니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느낌을 받는 영적인 시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아닌 하나님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며, 기도가 그치고 영혼이 메마르며 말씀의 감동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말 떠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방법입니다. 광야와 같은 어두운 밤을 홀로 지나면서,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전환하는 때가 바로 영혼의 어두운 밤입니다.

오늘 본문 요나서 2장은 요나의 어두운 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캄캄한 곳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1-2절).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의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의 시간도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허락하신 어두운 밤인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3 a절). 이제 요나가 하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봅니다 (4절).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부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7절).

요나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9절).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합니다 (10절). 어두운 밤이 지나면 감사가 찾아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이 이러한 영적 여정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서 참 예배자로 나아갈 때, 우리를 가로막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요나는 마침내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나서 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보다 더 큰 요나의 자기 의를 보았다면, 2장에서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 요나의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물고기 뱃속과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 신앙에서 하나님 중심의 믿음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혼의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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