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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8장

하만은 죽었지만 하만이 남긴 악한 영향은 페르시아 제국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어떤 관계인지를 왕에게 고하고, 왕은 하만의 자리에 모르드개를 세웁니다. 하지만 모르드개가 하만의 위치에 올랐다고 해도 왕의 조서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법도가 왕의 이름을 쓰고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8절). 하만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제비를 뽑아 유다인을 칠 날짜를 정하고, 유다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들을 멸절하라는 조서를 페르시아 모든 지방에 이미 반포했습니다.

에스더는 왕에게 마지막 간청을 올립니다.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려고 꾀하고 쓴 조서를 철회해 달라고 울며 구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그의 조서를 철회할 수는 없지만 유다인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조서를 반포하도록 허락을 합니다. 이미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나무에 본인이 매달려 죽었고 하만의 집이 에스더에게 넘어간 것처럼, 유다인을 치려했던 모든 원수들을 오히려 공격할 수 있는 조서를 내리게 됩니다.

이 조서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각 고을에 유다인이 함께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유다인을 치려하는 세력을 일망타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처자까지 죽이고 진멸하라는 명령이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만의 원래 계획이 유다 민족을 모두 죽이려고 했던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11절). 이는 감정적으로 아무나 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유다인을 대적하는 세력들만 반격하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조서의 실행일이 십이월 십삼일 하루 동안이라는 것입니다 (12절). 이는 첫번째 조서의 실행일과 동일한 날짜입니다 (3:13). 공식적으로 봤을 때 아하수에로 왕은 어느 한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유다인과 유다인을 해하려는 대적들에게 서로를 공격하고 반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왕이 유다인에게 베푼 은총은 그들이 대적을 보복할 수 있는 충분한 준비 기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정치적인 힘은 유다인에게 주어졌고 그들에게는 “영광과 즐거움과 기쁨과 존귀함”이 있었습니다 (16절).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첫째 우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만의 악한 영향력은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페르시아 전역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의 선한 영향력을 이 세상에 끼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권세를 이 땅에서 선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다고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왕의 조서가 선포되었다면 이제 싸워야 할 몫은 유다인에게 있습니다. 오늘 하루 주님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시시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승리하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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