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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3장

오늘 본문은 “그 후에” 라는 시간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어구로 시작을 합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즉위를 한 후 어느 때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장 큰 변화는 아각 사람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아각은 사무엘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말렉 왕입니다 (참고: 사무엘상 15:33). 하만이 아각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말렉 족속 중에 아각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사실은 하만이 그 근본부터 유다인과 원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부터 하만과 모르드개의 갈등이 시작이 됩니다. 하만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왕의 명령으로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꿇어 절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꿇지도 않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유다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절). 오직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유다인으로 하만에게 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만이 요구했던 것이 단순한 경례가 아니라 신적 경배에 준하는 행위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았던 사실을 하만이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신분의 차이가 컸기 때문에 모르드개가 서 있었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모르드개의 이러한 신앙심을 다른 신하들이 시기하고 하만에게 알린 것입니다 (4절). 이 사실을 알게 되 하만은 모르드개 한 개인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페르시아 제국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멸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만과 그의 무리가 첫째 달에 모여 유다인을 학살하기 위한 날을 제비를 뽑아 정하게 되는데 열두째 달이 나왔습니다 (7절). 열 한달이라는 시간이 유다인들에게 주어지게 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만이 학살을 하려고 했던 날이 열두째 달이 아니라 다른 달이 나왔다면, 유다인의 역사가 바뀌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8절 이하의 내용은 어떻게 하만이 한 민족을 학살하는 왕의 조서를 만들어내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과 어떤 거래를 합니다. 은 일만 달란트를 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유다인을 진멸하도록 조서를 허락합니다. 여기서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의 계획을 모른 채 허락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은 일만 달란트는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일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으로, 하만의 개인 재산이 아닌 유다인들을 죽이고 빼앗은 그들의 재산에서 상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9, 13절).

이렇게 조서는 반포가 되었지만 시간은 하나님의 편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상황 가운데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시고, 인도하시며, 살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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