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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17-32

사도 바울이 자주 쓰는 표현 방법 중에 대조법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설명하면서, 예수님 안에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22절과 24절을 보시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을 비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 사람이었을 때 상태가 17-19절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허망함으로 가득했고, 행동은 허망한 마음을 따랐습니다. 마음의 상태는 무지하고 굳어있는 상태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죽은 마음이었습니다. 옛 사람이 추구하는 마지막 모습은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를 “감각이 없는 자”로 묘사를 합니다. 양심에 화인 맞은 것처럼 방탕하고 더러운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고, 오히려 그러한 것들에 더 욕심을 냅니다.

22절과 24절의 비교를 다시 한 번 보시면, 옛 사람은 앞서 언급했던 썩어져 가는 구습(former way of life)을 따르고, 새 사람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을 입습니다. 옛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고,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릅니다. 영어로는 “to be like God” 즉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데 그 방법을 23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모습을 25절 이하 구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수고하며, 더러운 말은 일체 근절하며, 선한 말로 은혜를 끼치라 말씀합니다. 대부분이 우리의 언어 습관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인간 관계에 해당되는 상황입니다.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은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구습을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긍휼을 베풀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굉장히 구체적인 부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옛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알 수 있고, 어떻게 새 사람을 입어야 하는지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기 위해 말씀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이 새로와지는 귀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21장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디베랴 호수는 갈릴리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곳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역을 하셨고,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신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한가지 궁금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던 제자들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했던 것

 
 
요한복음 20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으로 옮기신 후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고, 그 다음 날인 일요일은 교회에서 주일 (Lord’s Day) 로 지킵니다. 무덤은 사랑했던 주님이 죽으셨고, 모든 소

 
 
요한복음 19장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은 조롱과 모욕을 당하십니다. 군인들은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유대인의 왕”이라 비웃습니다 (2-3절). 그러나 요한은 그 조롱을 통해 오히려 진실을 드러냅니다. 그들이 조롱하던 그 이름이 바로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왕이셨습니다. 다만 그분의 왕권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칼과 권력이 아니라, 침묵과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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